동유럽과 발칸 여행

독일과 드레스덴

건축사 2017. 11. 3. 22:00

10월15일,여행 둘째날. 독일!


독일은 발트해 연안이 본거지인 게르만 미족이 이동하여 건설한 국가로 5세기 말에 Franken왕국을 건설하였고, 이후 800년에는 Karl대제가 교황으로부터 황제칭호를 얻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유럽을 석권하게 된다, 그러나 세력의 약화로  지금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3분되는데, 동프랑크는 독일, 서프랑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기원이 된다.

이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다가 베를린 지방의 브란덴  부르크 선제후가 18세기경 스스로 왕으로 자칭하며 프로이션 왕국을 설립하였고, 프리드리히 1세가 등장한다. 이후 18세기 독일 제국역사는 새로운 대국으로 부상하고, 프리드리히 2대 대왕의 영토확장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50년대생인 내가 아는 독일의 인물은  Bismark수상이다, 그는 1871년 프랑스와의 전쟁(보불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맺은 조약에서 프로이센왕을 '독일황제'로 선포하여 전  독일인이 한 국가로 뭉쳐 독일제국을 성립케 한다. 

그러나 1914년 사라예보 사건으로 독일은 1차대전에 돌입함으로써 독일제국은 붕괴되고 말았으며,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체제의 시도로 탄생하였지만, 이번에는  나찌에 의해 혼돈에 빠지게 되었고, Hitler로 인해 국토가 분할 점령케 되어 동서독으로 분단되나 마침내 90년 10월3일 분단  41년만에 하나의 독일이 탄생하게된다.  
즉 독립국가로 국가를 경영한 기원은 200년 남짓하며, 

수도는 베를린이나 

경제,무역수도는 함브르크이며 

문화도시는 문헨이며

프랑크푸르트는 경제도시이다.


유럽 전체에서 독일인이 가장 혼혈이 많이 된 국민이라고 하고, 그것은 게르만 민족의 출처를 분명히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고,  동부초원에서 온 유목족인 게르만족의 정착으로 독일땅에 수많은 인종이 한데 섞이게 되었으며, 그이후에도 로마인이 라인강 지방을 정복하고 식민지화함으로 혼혈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독일인은 근면한 국민이고 이들에게 있어서의 근면은 절약쪽에 가까우며, 혼혈인이 많으면서도 단일국가의 국민임을 강조하고, 가정에 있어서의 자녀교육은  무섭도록 엄격하고, 건강과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다하더라도 검소한 생활태도는 철저하리  만큼 몸에 배어 있다고 한다.


드레스덴

11시간반의 비행끝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여 4시간의 버스여정으로 밤 늦게 라이프지히 근교에 여장을 풀고 일박을 한다. 이튿날 2시간의 버스이동 으로 드레스덴을 방문한다


 엘바강의 피렌체 (Elbflorenz)'라고도 언급되던 드레스덴은 문화의 명소였다, 독일 작센주의 主都이며, 1200년대부터 도시화가 되어 많은 건축물과 예술품과 문화가 있는 엘바강가의 아름다운 문화 도시였다, 그러나 2차대전 말기에 연합군측의 무자비한 대량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초토화 되었으나 ,지금은 복구되어 옛날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있다, 그러나 아직도 대전의 흔적을 군데군데에서 볼 수 있다.
건축재료는 대부분 철분이 함유된 사암이 사용되어 세월이 경과되연서 철분이 산화되어 검을색을 띠고 있는것이 연륜을 더해주는것 같아 더 멋있어 보인다.


Bundesarchiv Bild 146-1994-041-07, Dresden, zerstörtes Stadtzentrum.jpg

2차대전 당시 파괴된 모습(인터넷에서 퍼옴)


복구된 현재의 구도심

크로이츠 교회


드레스덴 구시가지의 시작점에 위치한 랜드마크, 크로이츠 교회는 독일 작센 주 최대의 개신교 교회 건물이다. 처음 완공된 것은 13세기 무렵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파괴되었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한 이후, 재건 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바로크와 아르누보 양식이 혼합된 얼룩덜룩한 외벽에서 전쟁 당시 폭격을 입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본래 다른 이름이었지만, 한 어부가 엘베 강에 떠 있던 십자가를 발견한 이후로 크로이츠(Kreuz: Cross) 교회로 부르게 되었다. 탑의 전망대에 오르면 엘베 강과 드레스덴 시내의 전경을 둘러볼 수 있다.


군주의 벽화

2차 세계대전도 피해간 벽화, 군주의 행렬은 레지덴츠 궁전에 딸린 마구간에 지은 건물인 슈탈호프의 벽면에 그려진 벽화이다. 1589년 처음 만들어졌는데, 이곳의 영주이자 작센 공국을 다스렸던 베틴(Wettin) 집안이 그들의 역대 군주를 기리기 위해서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다. 그러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망가지는 벽화를 복원하기 위해 그들은 1876년 가문의 800주년을 맞아 빌헬름 발터(Wilhelm Walther)에게 작품을 맡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림은30년을 버티지 못하고 손상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1907년 마이센(Meißen)의 자기로 타일을 만들어 그 위에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벽화의 길이는 약 101m이며 이곳에 사용된 타일의 개수만 해도 약 25,000개에 달한다. 이 행렬에는 군주뿐만 아니라 과학자와 예술가 그리고 농부 등 평범한 사람들도 그려져 있다.오랜 세월을 버티기 위해 타일로까지 만들어진 군주의 행렬은 2차 세계대전 중에도 폭격을 면하여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으며, 멋지고 품위가 있다.


마틴루터동상과 프라우엔 교회.

드레스덴 시민들의 마음이 모여 재건된 교회리고 한다, 프라우엔 교회는 1743년 93m에 이르는 높이의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중 공습으로 교회 건물이 파괴됐지만 드레스덴 주민들은 언젠가 다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벽돌 파편들을 따로 보관해두었다고 한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파괴된 채로 있던 교회는 이윽고 독일 통일 이후 재건되기 시작했다. 현재 교회의 밝은색 벽돌 사이사이에 있는 검은색 벽돌들이 바로 그 흔적이다. 교회 앞에는 종교 개혁에 참여했던 마틴 루터의 동상이 서 있다.

아름다운 만큼 사연도 많은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하우스, 처음 이 극장을 설계한 사람은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로 그의 이름을 본떠 젬퍼 오페라 하우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유럽의 오페라 하우스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이 건물은 역사 속에서 많은 곡절을 겪어왔다. 첫 번째 극장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두 번째로 재건한 극장은 드레스덴 공습에 의해 파괴되었다. 영국군과 미국군의 폭격기가 3일간 약 3,900톤 이상의 폭탄을 이곳 드레스덴에 투하하였고 이 결과로 드레스덴의 성모 교회 그리고 궁정과 젬퍼 오페라 하우스가 파괴되고 만다. 이후 20년간 공습으로 파괴된 모습의 외벽이 남아 있었으나, 젬퍼의 설계도가 발견되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단다.


엘바 걍변의 조망



걍변의 테라스, 멀리 괴테 동상이 보인다.

테라스로 올라가는 길가 골목.

궁존과 성당건물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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