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그라나다 Granada투어
어제 우여곡절 끝에 카탈루냐 바르셀로나에서 800여KM 떨어진 안달루시아 그라나다로 국내선 비행기로 무사히 이동했다, 당초에는 8시간이상 걸리는 야간 고속열차를 이용할 계획이었으나 딸아이가 비향기표를 예약해주어 편하게 도착하여 이른 아침부터 여행을 시작한다
오늘 아침은 정말 날씨가 쾌청하구나!
콜럼버스(산타페 협정)가 이사벨왕에게 보고하는 동상이 있는 시내중심가 이사벨라 카토리카 광장에서부터 투어를 시작한다. 야간에는 알바이신 지역에서 야경과 집시들의 플라멩고 공연도 볼 계획이다.
이사벨라는 최고의 왕이다 여왕이 아닌 남성대우의 왕이다, 그리고 그녀의 딸, 쿠아나 여왕 때까지 그라나다가 수도였다고 한다, 현재 26만명의 교육. 역사의 도시이다.
800년 나스르 이슬람왕조를 1492년에 몰아내고 가톨릭국가를 완성했다,
이 그라나다가 산골마을?이 라는 이야기의 실감은 멀리 보이는 3,500m높이의 시에라 네바다의 만년설 덮인 산맥(미국 네바다 주에도 같은 이름의 산맥이 있는데 이는 16세기에는 미국 켈리포니아, 멕시코 등이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점령군 스페인인이 자기 고향 산맥이름을 붙인 것임.)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스페인의 남쪽지역에 해당하며 해발 700m고도로써 그늘이 별로 많지 않아 여름에는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이곳 인도(人道)를 포장한 돌은 흰돌과 검은돌을 사용하는데 이는 도시주변의 두 개의 강에서 채취되는 돌을 이용하고 문양으로는 석류를 새겼는데 이는 물이 귀한 곳에서 물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과일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라나다는 석류를 뜻하기 때문이다.
먼저 대성당 Cathedral 그라나다를 방문했으며
1500년대에 180년에 걸쳐 건축했고 아직도 타워는 미완성상태이며, 이슬람의 대 모스크를 해체하여 건축했다고 한다.
그라나다 대성당
누에보(새로운 이라는 뜻) 광장을 거쳐 집시의 집단거주지역인 사크로몬테(거룩한 언덕)을 방문하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비탈진 곳에 집이 번듯하게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보이는 겉모습은 입구이고 그 내부는 동굴이라고 한다.
그들은 교육도 안하고 글도 없고 살아가는 방법만 자녀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하며 현재 서유럽 소매치기는 대부분 집시라고 하며 그들은 소매치기를 죄의식 없이 있는 사람의 것을 나누어 갖는다는 생각으로 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하기도 하고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하게 살 수가 있겠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로마에서는 시장이 집시에 대한 강경정책을 추구한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고 최근 로마시내에는 집시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엔 플라멩고 동굴 공연장이 있으면 나는 오늘밤 공연을 예약해 해두었다
이어서 사크라멘트의 집시 거주지를 거쳐 알바이신 지구(주거 지역)에 도착하여 이슬람 주거지의 아랍주택 내부정원과 외벽의 치장을 둘러보고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조망하였다
또 전망대에도 성당이 있는데 과거 모스크였다고 한다.
이슬람 주거지 아랍주택의 내부정원과 주택 외벽장식 알함브라 Reserva1925맥주
점심으로 터키식 아랍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케밥을 먹었고, 과거 이곳은 서고트인이 거주함으로 인해 독일등과 같이 맥주 문화가 발전하였으며 이곳의 Domestic Beer인 알함브라 Reserva1925맥주를 맛있게 먹었다. 어제 밤늦게 도착하자마자 목이 말라 일반 알함브라를 마실때는 몰랐지만 Reserva1925는 목 넘김이 훨씬 부드러운 것이 정말 맛있는 맥주인 것 같다. 이곳은 와인보다는 맥주를 선호하는 도시 문화인 것 같다, 어디 가나 술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네요, 하하하.
알람브라 궁전
아랍어로 “횃불을 비추면 붉게 빛나는 성벽”에서 유래하여 “붉은성”을 뜻하는 알람브라 궁전은 만년설을 머리에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그라나다의 작은 언덕 위에 솟아 있다,
또 나는 음악에 소질이 없어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작곡가 타레가, FranciscoTarrega 1852-1909)을 기타로 연주하는 고등학교 때 친구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타레가는 제자이자 애인인 콘차부인과 이곳을 방문하고 알바이 산 언덕이 붉게 물들던 저녁에 사랑을 고백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 날밤 타레가는 슬픔에 젖어 달빛 속에서 콘차에게 보내는 연가인 “알람부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한다.
그는 12마리 사자가 바치는 분수가 있는 사자 중정에서 여름 궁전이 있는 헤네랄리페 정원을 오가며 분수에서 솟아 올라 떨어지는 물소리에서 음을 찾아 실연의 아픔을 담아 내었다고 한다.
비록 타레가에게는 아픔이겠지만 정말 멋지지 않는가? 그리고 이 길은 지금도 사이프러스 나무와 분수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이 정말 장관을 이루고 있는 길이다. 아래 사진으로나마 느낌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눈이 멀었다는 것 보다 더 불행한 것은 없다”고 누군가(스페인 시인, 프란시스코 데 이카자)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아름다운 곳, 알람브라 궁전을 돌아 본다.
이 궁전은 이슬람 무어인이 철수하기 250년전이 1238년 나스르왕조의 무하메드1세때부터 건축을 착수했으며,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웅장하고 거대한 건축물은 아니나 섬세하며 이슬람 건축건축의 정수를 지닌 건축물로써 이슬람의 수학과 건축의 섬세함을 잘 나타낸 건축물인 것 같다,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리며 넉넉지 않는 재정으로 점점 쇄락해가는 왕조의 거처로써 마지막 숨을 몰이 쉬며 지은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100년후 유수프 왕이 코마레스 궁전을 건축하였고 이어서 마호메드5세에의해 알람브라궁전의 최대 걸작인 사자궁전이 완공되었다, 이궁전의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 각 왕조의 특성으로 새로운 궁전이 건축되고 보수되면서 오늘의 알람브라 궁전(Complex)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주인인 이슬람 보압딜왕은 전쟁에 피해 800년전 조상이 들어왔던 그 길로 쫓겨가며 스페인을 읽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알람브라를 다시 볼 수 없음에 개탄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그들이 넘었던 언덕을 “눈물의 언덕”이라고 한다.
이후 200년간은 폐허로 방치되어 거지와 집시의 소굴이었으나 스케치북을 쓴 이국작가 워싱턴 어빙과 작곡가 테레가가 이곳을 방문하고, 이들의 글과 음악에 의해 알람브라 궁전이 세상에 알려지자 스페인 정부는 국가기념물로 지정하고 보존.복구하기 시작했다.
알람브라궁전,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그라나다의 작은 언덕 위에 솟아 있다(멀리 눈덮힌 시에라가 보인다)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주간과 야경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
카를로스5세궁전
먼저 입구에 있는 로마네스크타입 궁전을 둘러보았으며 카를로스5세궁전으로 정복자로써 카를로스5세가 이곳으로 신혼여행 온 기념으로 1500년대에 착공하였으나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는 못하였다, 100년후에 2층, 최근에 기와를 올린 건축물로써 외부는 일반건축물 형상이나 내부는 원형회랑으로 이루어져있고 현재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이 궁전은 기존의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궁정으로 느껴진다.
건축 양식과 재료등 모든면에서 아무리 절대권력자의 지시에 의해 건설되었다하드래도 같은 건축가의 입장에서 씁쓸함을 느낀다.
카를로스5세 궁전 외부 내부 회랑
알카사바
이어서 군사건축물인 알카사바에 올라 그라나다 시 전체를 조망한다.
이 건물은 초기 미호메드1세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궁전경비를 위해 3단계 장애물을 설치하였는데 요새와 같이 구축되어 있다.
군사건축물 알카사바
망루에서 바라본 그라나다 조망
코마레스 궁전
알람브라 궁전의 주된 궁전인 나스르 궁전, 유수프1세에 의 건축되었으며 권위를 세우고 천하 무적의 왕조를 나타내기 위해 궁전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내부에는 알라를 찬양하는 “신 외에는 정복자는 없다’는 문장을 내부 여러 곳에 반복적으로 조각하여 이 왕조가 알라 신으로부터 축복받은 왕조임을 표현하여 범접하지 못할 것임을 표현하였고, 23m 높이의 천장에는 8,000개의 삼나무 조각으로 우주를 축소 조각함으로써 우주를 통제하고 있음을 표현하여 정치,외교에 의한 통치와 생존을 이 궁전을 통해 실현코자 하였다고 한다
먼저 법궁을 둘러보았는데 건축재료는 석회로 벽체를 구축하고 조각으로 마감 하였으며, 타일과 삼나무 조각을 벽과 천정 마감재로 사용하였다.
타일에 경전을 새겼고, 우리와 같은 좌식 생활풍습으로 인해 창이 낮게 설치되어 있고 타일도 1.5m지점까지만 붙여두었다.
타일부착 벽면
이어서 사신이 대기하는 바닥이 대리석인 대사의 방에 도착했는데 이들은 건축과 의장을 통해 권위를
극대화하여 사신의 기(氣)를 사전에 반쯤 죽이는 외교를 펴서 250년간 안정된 국가를 경영하였다고 한다,
가난하고 쇄락해진 왕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방안으로써 ㅣ 궁전을 건축하여 외교와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하는구나
앞문은 황금으로 치장하였고, 대사의 방으로 들어오는 통로, 대기실과 접견실은 아직도 그 화려함이 그대로
남아있어 그때의 상황을 느끼게 한다, 특히 접견실에서는 뒤쪽 창을 통해 웅대한 그라나다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이 왕조의 규모에 기가 질리고, 격자형 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영향으로 대사 자신은
작아지고 왕은 신비롭게까지 하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건축적으로 적절한 설계와 시공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궁궐로써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고, 또 이곳의 더위를 30km떨어진 만년설 녹은
물을 풍부하게 끌어들여 궁궐 내, 외부에 분수를 설치하여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냉방 및 공기조화까지도 추진하여 쾌적한 궁을 유지하도록 설계했다는 것이 참 돋보이는 것 같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영향으로 대사 자신은 작아지고 왕은 신비롭게까지 하는 분위기를 연출
아라야네스 중정의 남, 북측 전경, 특히 외쪽 사진의 북측건물은 물에 비친 건물의 형상이 완벽한 대칭이며, 매우 아름답다(현재 사진에는 그렇지 못함) 이슬람 건축의 기본단위로(Module?) 라쉬샤쉬르라는 단위를 사용했으며, 또 비례로써 그리스 로마의 건축에 적용한 수학적 비례를 도입하여 계승 발전시켜 당시의 이슬람의 고유한 수학, 비례로써 적용하여 이 궁전과 같은 건축적 아름다운 비례, 모습을 완성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도의 타지마할 묘가 이곳을 벤치마킹 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아라야네스는 천국의 꽃이란 뜻을 가진 회양목의 종류로 독특한 향을 가지며 최음의 효과도 있다. 그래서 대사가 이곳을 통과할 때부터 긴장과 최음향의 영향으로 기가 죽게 된다고 한다,
이 궁전을 건축한 왕인 유수프 1세는 어이없고 불행하게도 36살에 노예에 의해 살해 당했다고 한다,
중정 분수의 아름다움과 건축물의 대칭 비례
파란색이 많이 훼손 됨사자궁전
사자의 궁전은 마호메드 5세가 건축한 궁전이며 알람브라 궁전에 있어서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정말 아름다운 중전 건축물이다.
그러나 이 건물을 건축한 마호메드 5세는 집권초기 당쟁으로 그라나다와 원수지간인 그리스도왕국인
세비아의 카스티야왕국으로 망명하여 잔혹한 왕인 페드로왕과 로얄 알카자르 궁에 머무르면서 지식과
예술에 대한 친분으로 당시 군사적 갈등의 경쟁구조가 예술적 화합을 통한 화해의 발전구조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고, 향후 마호메드5세 왕이 그라나다로 복귀한 후 사자궁전을 건축할 때 세비아이 그리스도
궁전인 알카자르 궁전 양식을 본받아 건축하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현재 스페인에서 이슬람 건축의 최고정수로 평가 받고 있는 이 알람브라 궁전이 철천지원수인 세비아의 그리스도교왕국의 궁전양식을 본받아 건축했다고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는 사실을!
당시 세비아의 그리스도교왕국의 페드로왕은 이슬람건축에 관심이 지대하여 알카자르(스페인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건축한 망루가 있는 요세 건축물)궁전을 이슬람식 양식으로 정말 아름답고 화려하게 건축하였고 세비아 방문시 무더위에 긴 줄을 선 끝에 돌아볼 기회를 갖었었는데 건축과 내부 의장의 우수함은 세비아 알카사르 궁전이 앞서는 것 같고, 정원과 분수 등 조경설계는 알람브라 궁전이 더 우수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자궁전의 후궁전과 왕의 침전은 기둥 124개로 구성 되어있으며, 12 마리 사자로 분수를 떠 받들게
구성하고, 시각에 따라 사자 입에서 물을 뿜어내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왕 외에 어떤 남자도 출입이 제한된 할렘공간, 석회 세공으로 장식한 아라베스크 문양, 감탄을 자아낸다.
천
천정은 종유석 모양을 한 모카라베 장식, 정말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어서 여름궁전인 물의궁전,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을 가진 헤네랄레페 여름별궁으로 이동하는데 주변정원이 사이프러스와 꽃들로 너무나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사이프러스(측백나무)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것과 형상이 좀 상이하며 이곳에서의 형상은 유럽의 지형, 넓은 평지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서의 멋진 모습과 이곳 정원에서의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것 같다.
유럽에서는 이 나무가 신앙, 믿음, 영생의 의미를 뜻한다고 하여 무덤가에 많이 심는다고 한다,
당시 무슬림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 나무를 심었을까? 그들의 신에게 이승에서의 소망과 저승의 안식을 기원하며 정성껏 심었으리라 생각하며 나도 태양을 향해 길게 늘어선 사이프러스 오솔길을 걸으며 죽음과 영원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앞에서 타레가가 실연의 아픔을 노래로 승화시킨 길이 바로 이 길이다. 기억하며 사진으로나마 감상하시길,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선 정원
그리고 분수는 정말 환상적으로 설계하여 배치하였는데 조형적인 면과 기능적(에어컨) 역할 등 모든 면에 완벽한 것 같다, 정말 멋지다. 여름 궁전으로 시원함을 선사한다.
아세키아 중정의 분수와 정원수
아세키아 중정의 분수와 정원수, 물과 식물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 같은 곳
저녁에는 먼저 플라멩고 공연을 보고 알람브라 야경을 보았다, 멋있는 그라나다에서의 일정을 마치며 오늘 정말 감동적이었던 플라멩고 공연을 소개한다.
플라멩고를 스페인의 민속 춤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집시의 춤과 노래라고 아니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라나다시에서 좀 떨어진 곳에 동굴주거지역인 집시의 집단촌이 있으며 그곳에 동굴공연장이 있어 방문하였다. 갈 때는 택시를 타고, 내려올 때는 걸어서 여유를 가지며 왔다.
무릎이 부딪힐 정도의 지간의 거리에서 춤추는 무용수의 숨결과 표정, 체취까지도 느낄 수 있었으며, 너무나도 정열적으로 모든 정성과 혼을 쏟아 붇는 정말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내용도 단순 춤이나 행위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이 있는 공연이었고 문화의 한 장르라 생각되었다.
참고로 플라멩고의 태동은 어느 집시 할머니가 아침에 일어나 배고파 울고 있는 손녀를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로서의 애닯음을 애간장이 메이는 심정으로 특히 동굴 속의 공명으로 더욱 애절하게 노래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너무 감명 깊게 보느라, 또 이런 감동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도 없기에 사진으로 많이 남기지를 못했다.
금번 여행에서 나를 감동시킨 몇 가지를 든다면, 건축에 있어서는 가우디의 성 가족성당 대성전의 빛의 향연을, 정신으로는 로마시대 포로 로마노 유적과 유산, 그리고 문화로는 피랜체의 르네상스와 함께 이곳 그라나다 집시들의 플라멩고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 진한 감동을 안고 집시들의 산속 동굴 거주구에서 산 아래 문명세계로 걸어 내려오며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공연이었다.
멋진 그라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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