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일토요일 세비야!
스페인 속담에 세비야를 보지 않고 세계의 경이로움을 보았다고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는데 정말 관광객이 말이 아닐 정도로 많구나.
아침에 느긋하게 나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선글라스를 안 가져와서 갔다 오고, 카메라를 찾는다고 왔다 갔다 하느라 12시가 다되어 투어를 시작한다
먼저 Reales Alcazares왕궁(Royal Palace)을 돌아보았는데
알카자르(Alcazar) 건축은 건축의 배경으로 이슬람 무어인들을 몰아내려는 스페인의 노력이 더욱 거세 지면서, 요새이면서도 위압감을 주는 건축물을 마련해야 할 이중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알카사르의 형태는 보통 직4각형으로, 방어하기 쉽게 설계한 벽과 네 귀퉁이의 거대한 탑이 있다. 알카사르 안에는 널따란 중정(파티오)이 있고, 그 주위를 예배당, 살롱, 병원 등이 에워싸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 정원도 딸려 있었다. 세고비아(14세기)와 톨레도(14세기, 개축 16세기)에도 알카사르가 세워졌으나 가장 유명한 것은 이곳 세비야에 있는 것으로 이곳의 성벽은 1364년에 세워졌다 이슬람과 스페인 양식이 결합된 전형적인 무데하르 양식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건축과 조경이 참 잘 어우러져 있으며 규모도 방대하다.
8세기 북아프리카 무어족들이 지브롤터를 건너 스페인으로 넘어와 그라나다에는 나스르 왕국을, 이곳 세비야에도 이슬람왕국을 건설하여 1248년까지 번창하였다.
이 건축물은 기독교세력이 이슬람세력을 견제하고 몰아내기 위해 건축하였으며, 14세기 페드로 1세가 대대적으로 개축하면서 알람브라 궁전을 본받아 많은 부분이 유사하나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건축 구조물 측면에는 이 왕궁이 훨씬 우수하나 정원의 배치나 분수의 설계에 있어서는 많이 뒤쳐져있는 것 같다. 기독교도 스페인인이 건축한 궁전이나 당시 이슬람 건축 양식을 많이 채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구석구석 돌아 보느라 시간도 많이 보냈고 힘도 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궁접 입구
Reales Alcazares왕궁의 내부 및 의장 - 화려하고 섬세한 의장이 돋보인다
정원
사
금번 여행에서 로마를 비롯하여 각국의 많은 성당을 방문했었고 모두 고유의 특징을 갖춘 건축물 이였지만 세비야 대성당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건축공간을 연출하고 있었다, 먼저 규모면에 있어서 베드로 대성전의 규모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미사 전례상 성전은 제대와 성가대, 회중석이 중심이 되고 카플러가 주변에 배치되는 일반적인 배치이나, 세비야 대성당은 콜럼버스가 가져온 금20톤으로 장식한 제대와 뒤쪽 장식(마리아상과 그리스도 및 사도상-성서 내용을 Visual하게 조형, 그림으로 표현하여 당시 문맹이었던 신자들을 교육하기 위함) 이 성전의 거의 중심에 위치하여 타 성당과는 평면배치에 있어서 조금의 차이가 있는 성당인 것 같다.
물론 이 성당은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성 바울 대성당에 이어 3번째로 큰 성당이나 세비야 대성당만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 받았다고 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으로 봉헌된 제대
제대 뒤쪽 그리스도, 마리아상 및 사도상을 비롯한 제대 뒤쪽 그리스도 및, 마리아상
성서내용을 형상화한 장식
제대 앞 성가대석
세비야 성당은 1248년 스페인 기독교인이 무어인 들로부터 세비야를 수복한 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알모하드 모스크를 성당으로 축성하였다고 한다. 그 후 스페인 정부가 스페인의 부와 힘을 상징하는 대성당 건립을 기획하면서 이 모스크는 헐고, 세비야 대성당은 1401년경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장방형 초석을 다진 것을 시작으로 하여 꼭 한 세기가 지나서야 완성되었다.
대성당이 건축되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모스크의 흔적이라고는 연못과 희랄다 종탑이 딸린 현관의 안뜰뿐이라 한다.
구조로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을 채용했으며, 내부는 리브(Rib),보르(Vault), 아치(Arch)구조이며 외부는 하중을 견디기위해 Flying buttress를 채용하였다.
신앙의 승리를 상징하는 청동 여신상 히랄다 종탑성전상부 구조 형상(Flying buttress를 체용함)
종루인 히랄다 탑에 올라서(금번에는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로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설계) 성전의 상부 조망뿐만 아니라 세비야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다.
세비야 시내 전경, 원형건물은 투우장이다
또 성전 내에는 보물을 보관하는 곳이 있고, 최근 진위문제가 대두된 콤롬버스의 유해가 스페인 통일前 네 왕국의 거인이 메고 있는 관에 안치되어 있다.
보물들
컬럼버스 묘지, 네 왕국의 거인이 메고 있다.
Hospital de los Venerables방문
이곳은 벌써 한여름이다, 한낮에는 너무 덥고 힘들었는데 이곳은 과거 병원에 부속된 성당 내에 예술품과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인데 마침 냉방이 되어있었고 소규모 연주회 팀이 리허설을 하고 있는 참이라 시원하게 연주를 들으면서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덕분에 힘을 회복하여 오후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벽, 천정에 회화가 그려져 있고 또 걸려 있다
그리고 늦은 점심을 Santa Cruz(산타크루즈) 거리에서 이 지방의 음식인 생선과 닭튀김을 주문하고 토마토를 주문했는데 튀김요리는 그런대로 맛있게 허기진배를 채울 수 있었으나, 사실 30도가 넘어가는 한 여름 3시경에 점심을 헉헉거리며 먹는데 무슨 특별한 맛은 느낄 수는 없고, 다만 시원하고 상킁한 맛을 위해 토마토를 시켰는데 이런 우라질! 소금을 드리부은 데다가 후추와 올리브유를 듬북 넣어서 상에다 올려놓는데 야! 안 먹을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물을 사서 씻어서 먹었답니다, 와 시원한 콩 국수에 얼음을 띠워서 한 그릇 했으면 좋겠다. 비록 MSG가 듬뿍 든 냉면이라도 개의치 않겠다!
이곳 산타크루즈 거리는 상점들과 음식점이 모여있는 구 시가지로써 골목도 좁고 구불구불하며 너무나 관광객들로 다니기도 어려운 곳이디.
지역 투어센터에서 소개해준 곳을 다녔는데 이것은 관광투어가 아니라 성지순례? 아니 성당순례라 하는 것이 맞겠다.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 교회보다 이곳 성당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말 그대로 성당이 붙어있는 것 같다, 한집 건너 성당이고 길 건너면 성당이다. 오늘 성당만 6곳을 순례했고, 그 중에 2곳은 보수 중이고, 또 산타크루즈 성당에서는 결혼식을 하기에 참석해서 축하를 해주었고, 또 한곳에서는 유아영세를 하더구나, 오늘 다리가 아프도록 성당을 순례했다.
(오해가 없기를 밥을 공짜로 먹기 위한 참석은 아님)
저녁 무렵 힘들게 찾아간 오후 마지막 일정인 Casa Pilato(본시오 빌라도의 집), 시간이 늦어서 입장은 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에서 자전거로 시내를 투어 하던 가족도 우리와 같이 헛걸음을 하고 입구 사진만 남긴다, 세비아의 투어 센타에서 추천한 곳으로 이 집은 개인 주택이나 15세기에 지어지고 계속 증축된 스페인의 유명한 가문인 Medinacell의 주택이다, 이집을 “본시오 빌라도의 집”이라 부르는 이유는 오랜 옜날 이 가문에서 예루살렘성지를 순례하며 빌라도의 집을 가 보았고, 이후 그 집을 모방했다고 한다, 개인 주택이나 Collection한 유물이 방대하다고 하고 건축 양식은 건축구조와 내부치장에 있어서 무슬림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일부 치장에 있어서는 가톡릭적인 요소도 많이 있다고 한다, 보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아쉽다.
산타크루즈 지역 관광을 마치고 이른 저녁(이곳에서 7시반 저녁은 이른 시간임)으로 타파즈와 돼지고기요리를 시켰는데 또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저녁을 때우고 걸어서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되었고 만국박람회장으로 건축된 스페인광장을 찾는다
Casa Pilato(본시오 빌라도의 집)입구 콜럼버스 기념탑
걸어오는 길에 우리 숙소 hotel 바로 앞에 있는 공원을 드렀는데, 이 공원에는 콜럼버스가 처녀 항해 시 타고 갔던 선박을 형상화한 조형물(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무지 큰 나무와 오랜지가 주렁주렁 달린 오랜 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오랜지를 다 먹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참았다. 옆에 있던 이브가 자꾸 유혹했지만 참았다, 하하하.
이브가 누구게? 집사람!
고목 나무 돈주앙(don Juan) 동상, 손에 오랜지, 그만큼 흔한 과일
스페인광장
크리센트(반달 모양) 형상의 건축물로써 앞쪽에는 해자를 설치하여 물을 가두어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으며 규모가 상당히 크고 밤에는 조명으로 야경이 매우 좋다고 하는데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었는데도 몰라서 기회를 놓였다. 낮에 사진은 많이 찍었다.
스페인 광장입구에는 이 길 건너에 있는 18세기에 지워진 구 왕립담배공장이 지금은 세비야 대학이며 이곳이 메르멘의 소설 “카르멘”의 무대가 된 곳이다. 카르멘은 이공장의 여공이었고 연정을 품은 호세는 이 공장에서 감시(경비)병으로 일했다고 한다. 아래에 소설 카르멘 줄거리를 소개한다.
이곳 세비야도 플라멩고가 그라나다 보다 더 유명한 것 같다만 시간적인 제약과 그라나다 동굴 플라멩고를 본 감동이 지대하여 이곳에서는 생략하기로 했다.
내일은 오전 투어를 하고 오후 2시45분발 기차로 마드리드로 간다. 그래서 아침에는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탐험선의 기착지인 과달키비르강의 팔로스 항구와 골든 타워를 구경하고 강의 유람선도 탈 수 있도록 시간 배정을 잘해야겠다.
(세비야가 무대인 메르메의 중편소설 카르멘을 간단이 소개한다.)
열정적인 집시 여인 카르멘과 촌뜨기 돈 호세의 사랑과 파멸 바스크에서 태어난 기병 하사 돈 호세는 고지식한 청년이다. 그런데 세비야에 있는 담배 공장의 경비를 맡게 되면서부터 운명의 바퀴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담배 공장의 여공인 집시 여인 카르멘이 놀리는 말과 함께 입에 물고 있던 아카시아 꽃을 그에게 던져 준 것이다.
그 직후 싸움을 일으켜서 상대방 여자를 찌른 카르멘을 감옥으로 호송하는 도중에 호세는 그녀의 감언에 넘어가 그녀를 도망치게 한다. 영창에 들어가게 된 데다 일병으로 강등된 호세에게 카르멘은 감사의 표시라며 미친 듯이 웃으면서 자신의 몸을 허락했고, 그가 다시 만나자고 조르자 “나는 악마야. 나랑 같이 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걸” 하면서 냉정하게 거절한다.
그 뒤 카르멘의 부탁으로 밀수입을 묵인하고, 더구나 경쟁자인 중위를 찔러 죽인 호세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패거리에 끼게 되어 점점 타락해 간다.
이윽고 카르멘의 남편인 외눈박이 가르시아가 탈옥해 나오자 질투에 휩싸인 호세는 카드 놀이에서 사기를 쳤다는 빌미로 결투를 신청해 가르시아를 죽여 버린다. 카르멘은 그런 호세를 향해 “우리는 같이 죽을 운명이야. 흥, 그게 어때서?”라고 큰소리를 치며 캐스터네츠를 울린다.
이제 명실공히 카르멘의 남편이 되어 더욱 그녀에게 열을 올리게 된 호세와는 반대로 카르멘은 차츰 사랑이 식어 간다. 그래도 부상당한 호세를 열심히 간호해 주는 착한 면도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생활에 질려버린 호세가 미국으로 건너가 같이 새 생활을 시작하자고 부탁하자, “내가 지금 양배추나 심으면서 살게 되었어?” 하면서 아예 상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카르멘은 젊은 투우사인 루카스에게 마음을 주게 되고, 이에 격노한 호세는 루카스가 쇠뿔에 찔려 중상을 입은 그날 밤 카르멘을 인적 없는 산속으로 데리고 가서 칼을 들이대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한 번 미국으로 가자고 애원한다. 하지만 그녀는 “당신은 내 남편이니까 나를 죽일 권리는 가지고 있겠지. 그러나 카르멘은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해”라고 하면서 끝내 거절한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호세는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인다.
분방하고 음탕한 집시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작가의 에스파냐 취향과 함께 집시에 대한 호기심과 학식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어두운 숙명과 그에 맞서는 뜨거운 정열이라는 주제는 낭만적이지만, 그것을 묘사하는 메리메의 문장은 극도로 억제되어 있다. 이 작품을 소재로 작곡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과 같은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야말로 낭만주의의 고전파라 불리는 메리메다운 단정한 걸작이다.
허례허식이 없는 자연의 여자, 카르멘
카르멘은 ‘세련된 모습에 작은 몸집을 가졌고, 정욕적인 큰 눈 속에 때로는 난폭한 빛을 띠는’ 집시 여인이다. 이런 여자가 입에 아카시아 꽃을 물고 주먹을 허리에 댄 채 마치 ‘코르도바의 목장에 있는 젊은 암말처럼 허리를 흔들며’ 걸어온다. 야성적이고 관능적이며 무엇보다도 자유를 사랑하는 이 여자는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는 몸과 마음을 다 바치지만, 일단 상대방이 싫어지면 아무리 애원하고 협박해도 차갑게 내쳐 버린다. 돈 호세도, 그 전의 남편인 가르시아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녀는 음탕한 여자이며 범죄자이기도 하다. 남자에게는 그저 재앙만 불러오는 위험한 여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카르멘을 미워할 수가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여자가 자기 스스로에게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세에 대해서도 어떻게 보면 철저히 성실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당신 같은 애송이는 상대할 생각이 없어”라고 말했지만, 일단 관계를 맺자 아내로서 침식을 잊을 정도로 잘해 준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고 거짓말이 들통 나자 체념하고 모든 것을 고백한다.
그녀는 자신의 언행에 대해 부정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호세의 손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마음을 속이고 그의 말을 따르는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 또한 호세가 자기에게 운명의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카르멘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면서까지 상대방을 속이는 짓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메리메는 카르멘을 집시 여인의 전형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카르멘을 통해 허례허식이 없는 자연의 여자를 그려 내어 그것을 이른바 문명사회에 내밀었던 것이다. 그녀가 정렬의 스페인 여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조금은 순화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탄생되고, 이후 뮤지컬 카르멘은 더욱 각색되어 열정적이고 자유 분망한 카르멘이 호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호세를 위해 자신이 대신해 칼에 찔려 죽는 비운의 여인으로 나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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