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

이탈리아 로마 여행기

건축사 2015. 9. 17. 20:23

11일차 4/30

2000년전 로마의 숨결을 느껴본다.


콜로세움
로마유적 중에서 로마인이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유적으로 그 규모와 건축술에 있어서 아직도 로마인의 지혜와 기술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외부 형상 

                                                                                                          외벽의 구조 형상

내부 바닥 구조(인테넷에서 퍼오다)                                                      외부 대리석 아치 형태

 

이런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72년에 착공하여 80년에 건축을 완료했다고 한다, 그것도 대리석 삐안코, 나는 우리성당(복산)을 지을 때 제대뒤쪽 벽면을 장식할 이 대리석을 구하기 위해 무지 노력을 하였으나 이태리산 흰색 대리석인 삐안꼬를 구하지 못하고 중국산 삐안코를 구했는데 이곳에서 보니 현재 콜로세움을 건축한 원재료는 모두 이태리산 삐안코를 사용했다고 하니 정말 경이롭다!!

콜로세움 건축과 관련하여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그 아들이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내가 알기로는 네로 황제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몇 자 적어본다.
네로 황제는 어머니의 혹독한 훈육에 반항하여 3번에걸쳐 살해를 시도했으나 물에 익사와 독살은 실패했으나 마침내 저격수를 보내 살해를 했으며, 이후 자책하며 살다가 로마 화재 후 황금궁전과 연못을 만들어 시민에게 개방하여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나 더 악화되어 도망하게 된다, 그러다 유다 징벌 이후 총독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다시 민심을 얻기 위해 콜로세움(유다 솔로몬 궁전을 헐어서 가져옴)세워 대내외에 강성로마를 들어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래 콜로세움 명칭은 이 건축물의 이름이 아니고 옆에 있었던 청동 네로황제의 동상(지금은 없어짐)을 이르는 것 이었으나 이 건물의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건축 당시 의도인 모의해전을 치르기 위한 물을 공급할 수로가 있고 이후 검투장으로 사용시 맹수를 끌어올릴 엘리베이터 설비가 있으며,
한번에 5~7만명을 동원할 때 신속한 동선처리(30분내에 입장 및 퇴장)를 위해 각 통로에다 게이트(Gate)명칭을 기록하여 활용함으로 단시간에 입장과 퇴장이 가능하게 하였다고 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검증되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는 그리스가 우상(당시만 하드라도 그리스에 모든 면에 열세였음)이었으나 이렇게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성장하여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를 본받되 로마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마 개선문.


건설한 이유는 로마가 한창 성장할 시기에 전장에서 승리한 장수의 개선을 환영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로마에 수십 개가 건설되었다고 하나 현재 3개만 남아 있으며 모두를 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본 것은 코스탄티노 개선문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이는 개선장군이 아니고 로마를 통일했다는 이유로 315년에 개선문을 세웠던바 원래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이 황제는 313년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고마운 황제일 뿐이지만 콜로세움 옆에 있는 코스탄티노 개선문은 참 멋있다.
그 외 나머지 2개 티투스 개선문과 셉티미우스 세비루스 개선문도 모두 보았다.

 

                            코스탄티노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비루스 개선문


참고로 파리개선문도 멋있고 위치도 파리 가장 번화가 건축 되어있다, 나폴레옹이 세운 것으로 당초에는 로마를 점령한 후 이 코스탄티노 개선문을 철거해서 파리에 설치하려 했으나 불가하여 별도로 설치했는데 현재는 파리개선문이 모든 개선문의 시초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1000년 이상의 차이가 나는 짜가, 너무 비속한 표현이어서 수정하면 로마 개선문의 Cpoy이다.

참고로 현재 영국, 터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로마 및 미국에 설치되어 있는 모든 오벨리스크(이게 무엇인지 모르면 내가 쓴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모두 이집트에서 훔쳐왔던지 아니면 Copy한 것이 듯이 개선문도 그렇다.

콜로세움과 개선문을 돌아보고 카타콤베로 가는 길에 대전차경기장 유적지를 지나쳤는데 내가 알기로는 영화, 내가 중학교 때 문화교실? 가서 본 영화에서  말이 끄는 전차들이 달리는 경기장  유적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보니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는 상태로써 강의 범람으로 땅속에 묻혀있는 상태로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하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모든 길은 로마로부터 고속도로


그리고 가는 길에 과거 " 모든 길은 로마로부터" 라는 말이 나온 당시의 고속도로를 볼 수 있었는데 부럽구나. 2000년전 당시 로마군사들이 정벌을 나설 때는 고속도로를 먼저 조성하는데 지반공사를 철저히 한 후 주먹돌로 도로포장까지 한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지금까지 도로로 사용하고 있고 또 현재도 로마 도로포장의 주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하니 경이로울 수 밖에!.


 
 당시 건설된 고속도로     대전차경기장 유적지


로마의 목욕 문화에 대해서

 

또 대형의 목욕탕 유적지를 볼 수 있었는데 로만베스(Bath)와 같이 이 목욕탕도 기원전에 건설하였듯이 로마인들은 목욕을 생활화 한 것 같구나.


그리고 여기서 미국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로마의 목욕문화가 매우 음탕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 사람들은 항변을 하는구나, 이유는 실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를 지배하고 있는 유다인 자본이 로마인이 자신들의 조상들, 솔로몬이 세운 궁전을 모두 헐었어 로마로 가져가버리고 또 자신의 조상을 노예로 데려다 로마건설에 이용하고 천년 이상 국가도 없이 떠돌게 만든 철천지 원수이기 때문에 로마문화에 대해서 늘 부정적으로 표현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나도 동의를 하며 당시에 로마 외에 어떤 문명국가가 있어서 이런 문화 생활을 할 수 있었겠는가? 국민을 위해 이런 대형, 수 천명이 들어가는 목욕탕을 건설해주는 국가가 부러울 뿐이다.

카타콤베

이어서 카타콤베를 방문했는데 일반관광객에게는 단순 지하묘지 유적이겠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성지인데 공교롭게도 그곳은 교항청에서 관리중이고 한국인 신부님께서 상주하면서 관리를 하신다.

먼저 왜 이런 지하묘지가 생기게 되었는지 알 필요가 있는데 당시 파리인구가 5만정도로 유럽 대부분 도시인구가 그 수준이었으나 로마는 상상을 초월한 100 만의 인구였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로마시정을 이끄는 시장이라고 한다면 장례를 어떻게 할 것인지 깊게 고민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당시만 하드라도 매장풍습이라 묘지부족이 심각한 상황이었을 텐데 이 카타콤베가 그 문제를 해주었다고 한다.
카타콤베란 먼저 지하에 3m정도깊이의 갱도를 파고 양면에 구멍을 파서 3-4구정도를 매장하는 풍습인데 최근 위성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로마에만 40 990KM의 연장 길이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갱도를 팔 수 있고, 또 매장할 수 있는 구멍을 팔 수 있는 것은 이 지역의 지반이 응회암 지구로 매장할 수 있는 갱도를 쉽게 팔 수 있고 또 파낸 가루에 물을 섞으면 시멘트와 같이 단단하게 굳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지하묘지 건설이 가능했다고 한다.

참고로 현재 교회에서 사용중인 PX를 겹쳐서 사용(아래 사진)하는 것은 당시 카타콤베에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천주교인들의 은어였다고 하는구나, 즉 라틴어로 X C P R을 나타내는 말로 이는 CR , 그리스도(Christ)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키타콤베 내부는 사진촬영이 불가하여 지하 성당 사진만 올린다  .


 

수도교, 수로

이어서 수도교 유적지를 방문했는데 아직도 당시 로마가 건설한 이런 수도교를 통해 물을 공급받아 분수 및 주요도심에 물을 공급하고 있는데 정말 나는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유적지를 보니 정말 두렵기까지 한다.
우리 시골에 가며 옥연지라는 대형의 댐을 일본시대, 1930년대에 건설하고 달성군 주변의 농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데 공급할 곳이 산으로 막히기도 하고 하천으로 끊어지기도 하는데 일본사람들은 산에는 터널을 뚫어서 수로를 개척하고 하천의 경우는 하천 밑으로 관을 묻어서 하이폰 원리로 물을 보내며 일부 지반이 낮은 곳에는 이곳 수도교와 같은 용수 전용 교량을 콘크리트로 개설한 것을 보고 정말 일본 놈()들의 기술이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로마는 벌써 2000년전에 이런 수로를 개설하여 생활용수뿐만 아니라 분수에까지 물을 공급할 생각을 했다니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물 흐름의 기울기를 1/1000로 유지했다는 것을 보고,
이런 수로교는 이곳뿐만 아니라 로마 도심 곳곳에 유적으로 남아있고 일부는 아직도 수로로 사용하고 있다니.

 

 수로교 구모가 어마어마하고 장관이다!

사도 바울 참수터

이어서 바울 사도의 참수터를 방문하여 그가 갇혀있던 곳에 세워진 성당을 둘러보았다.
잘 알다시피 그는 터키 출신 부자이며 로마 시민권자였고 그리스도교 박해자였으나 회심하여 그리스도교의 기본을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순교자이다.

 
            참수터 성당 입구 

                                                                          투옥되었던 장소

  

판테온 신전

이어서 판테온 신전을 둘러보았다
돔 직경 43.3m . 3,000톤의 상부 돔 무게를 견디게 6.7m 벽두께를 유지하고 있는데
채광을 위해 돔 중앙에 설치한, 뚫어놓은 지름9m 돔 채광창이 어떻게 현재의 구조계산에도 불가사의 하다고 한다.
하여튼 현재까지 남아있는 로마건축물 중 유일하게 거의 온전하게 남은 것 중의 하나라고 하며, 내부에 천재화가 라파엘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정면 전경(야경 사진)

                                                                                  중앙 돔의 채광 창

     

      신전 측면

 신전 내부(제대쪽 돔)


라보나광장을 둘러보았는데
현재는 사대강 분수(갠지스강, 나일강, 남미 아르헨티나의 플라타강과 유럽의 다뉴브강을 상징하는 조형물 설치)가 설치 되어져 있으나 이곳 지하에는 당시 로마 대전차경기장이 있던 곳으로 강의 범람으로 폐허가 되어있었던 곳을 교황청에서 중세에 성전과 분수를 건축하여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지하 대전차경기장을 발굴하지 않고 부분만 발굴하여 전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어서 캄비톨리오 광장을 방문하였는데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계단을 볼 수 있었는데 오를 때 높은 쪽의 계단 폭을 넓게 하여 시각적으로 거리를 짧아 보이게 하였으며, 또한 좁은 광장을 넓게 보이도록 광장에 기하학적 도형을 설계하였다, 정말 회화뿐 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천재임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높은쪽 계단폭을 넓게 오르는 계단이 짧아 보임.

                                         좁은 광장에 기하학적 도형설치로 넓게 보임.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에 대해서는 내가 너무 마음이 벅차서 다시 한번 방문하고 자세히 소감을 기록할까 한다..

한마디로 로마의 가장 정신적인 유적이고 로마인들이 콜로세움이상으로 연구하고 발굴하여

로마와 이탈리아민족의 영원한 자랑과 자부심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유적지로 생각된다.

그곳을 방문한 내 마음을 표현하라면 너무 감동이 벅차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이라고, 5/3일 다시 방문하고 정리할까 한다.

 

트레비분수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햅번의 햅번 스타일 머리를 한곳을 기억하시나요나는 개인적으로 햅번 스타일을 한 여성분들이 참 깜찍하고 이쁜 것 같더라,
각설하고 실제 분수대 옆에 이발소가 있었는데 1700 년대 바로코 시대 바로코 스타일로 분수를 건설할 때 분수대 옆 이발소 주인이 요즘으로 말하며 소음과 분진으로 민원을 자꾸 제기하여 건설에 어려움을 주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최종 건설된 분수에는 이발소에서 분수를 볼 수 없도록 조형물을 설치했다고 한다, 사진을 보세요, 삼면 어디에서도 분수를 볼 수 있는데 이발소에서만은 볼 수 없어요, 내가 다 고소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런 발상을 한 건축가의 천재성에 찬사를 보내고 나만의 고소함을 느끼고 한바탕 웃음을 웃어본다.

현재 트래비 분수는 보수 중에 있다

    

 보수중인 트래비 분수 

     오드리햅번이 머리한 이발소 앞에 설치된 조형물,    이 조형물로 인해 이발소에서는 분수가 안 보임.

 

 과거 보수작업전의 분수 (인테넷에서 퍼옴) 

 

                                                                     문제의 이발소, 현재는 가방점이고   유리에 로마의 휴일 포스터가 붙어 있음(자세희 봐야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페인광장을 둘러보고 오늘 일정을 마친다.

이곳 스페인 광장은 로마에 있는 스페인 대사관 주변에 위치하여 이름이 붙여졌으며, 주변에 명품점이 많아

동양의 부자들의 쇼핑지역으로 유명하고,

특히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젤라또를 빨면서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세계 많은 젊은 여성들에

선망의 대상이 되어 너무나 많은 젊은여성들이 젤라또를 들고 다님으로 인해 현재는 여성은 젤라또를 들고 계단을 오를 수 없다고 한다 

 스페인 광장 계단

이탈리아 케익 가게  

          

오늘도 정말 많은 곳을 둘러보았다, 참 로마인은 대단한 민족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부럽기까지 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구나.

 

내일은 내가 정말 가고 싶은 르네상스의 고향 피렌체로 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