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1 여행 이야기
2015년 봄, 유럽 여행기(4/20부터 5/14일까지)
퇴임과 더불어 찾아온 시간의 여유를 가족과 더불어 12월 호주/뉴질랜드에 이어 서유럽 5개국을 다녀오며 , 여행기라기 보다는 아이들과 매일 연락한 기록을 정리해본다.
ᆞ1일자 4/20
전일부터 내리던 비가 한달 전에 반값으로 예약해두었던 서울행 비행기편을 Risk가 없는 KTX로 바꾸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했지만 다행히 안개가 걷히어 김포공항으로 올라와 인천공항을 통해 늦은 밤 여행을 시작한다.
ᆞ2일차 4/21
11시간의 비행 끝에 터키의수도 ISTANBUL 아타튀르크공항에 도착하여 형제의 나라, 오스만 터키의 영광과 이슬람의 찬란한 문화의 나라를 접하기 위해 공항청사 내에서 참 많이도 돌아서 이제 막 공짜 투어(이곳 이스탄불 여행은 터키항공사에서 6시간 이상 대기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로 음식에서 관광비용 일체를 부담함, 내 생각에 인당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됨)를 신청을 하고 쉬면서 이 글을 쓴다.
투어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Passport Control을 통과해서 이스탄불 시내로 나와야 함이 기본인데도 불구하고 여행객들 편에 휩쓸려 Transfer하는쪽으로가서 또 그곳에 스타벅스가 있음으로 인해 오해를 해서 새벽운동을 하는 기회를 가졌었다.
나는 그간 세계 여러 곳을 출장여행을 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에 한곳이 이곳 가톨릭 동방교회의 중심이었으며 술탄왕국의 나라 터키였는데 오늘 오락가락 하는 이슬비와 함께 숨이 막힐 것 같은 찬란한 건축문화의 현장을 둘려본다. 이곳 이스탄불, 구명(舊名) 콘스탄티노플은 5세기부터 로마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황제가 거주한 황제의 도시였으며 1453년 터키인에게 함락되기 전까지 제국의 수도로써 도시와 궁전은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되고 그 아름 다움을 ”도시는 교회로 가득 차 있어서 마치 배위에 펼쳐진 돛과 같다”고 칭송이 이어지던 곳을 찾아본다
먼저 아침으로 치즈와 야채 그리고 터키의 전통 차와 함께 멋진 아침을 즐기고 이어서 Blue Mosque를
둘러보았는데 푸른색 타일을 사용해서 건축했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여졌으며, 내부에 들어가면 대형의 Column 네 개가 전체 Dome을 지지하며 그 위에 전형적인 돔을 얹어서 많은 대중이 한번에 예배를 볼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을 건축한 것으로 이슬람 종교 교리와 관련된 내용이 내부 건축의장에 반영되어 있으며 정말 멋진 건축물이고 문화유산으로 생각된다.
Blue Mosque 돔 내부 전경
내부에 사용된 타일
이어서 주변에 있는 오벨리스크와 Serpentine Column을 구경하였는데
먼저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 디킬리타스라고하는데 이 화강석 오벨리스크는 무려 그 높이가 25.6m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500년 경, 이집트의 투트모스 3세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카데쉬에서 히타이트 군대를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집트 나일강가에 있는 룩소르 카르낙 신전에 세운 것인다. 이 오벨리스크를 이집트에서 가져온 사람은 유리아누스이며, 지금의 장소에 세운 사람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이라고 한다.터키인 가이드는 이집트에 있던 것을 선물 받은 것으로 1개의 돌을 사용하여 제작된 것으로 23일만에 옮겨와 재설치를 했다는 내용을 영광스럽게 설명한다.
세마리의 뱀기둥(Serpentine Column )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도시국가)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페르시아군의 방패를 녹여 이 뱀기둥을 주조하여 델피의 신전에 세웠다. 원형은 세마리의 뱀형상 기둥에 3m황금그릇(트로피)를 바치는 형상이며 그 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로옮길 때 세계의 중심이 새로운 수도로 옮겨졌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델피의 뱀기둥을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1700년초까지는 뱀머리와 트로피가 있었으나 파손되어 뱀머리는 이스탐블 고고학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에 각한개씩 보관되어져있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의 오벨리스크 오르메수툰 뱀기둥 옆에 오벨리스크 모양의 거대한 비잔틴 첨탑이 보인다. 높이는 32m이며 이 탑은 비잔틴의 콘스탄티투스 7세가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 모양은 울퉁불퉁하게 돌을 쌓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 그 돌기둥은 청통판으로 덮여 있었으나십자군 침략 때 약탈당했다고 한다, 현재는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있다. 이집트 오벨리스크 Serpentine Column 콘스탄티누스의 오벨리스크 오르메수툰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픈 마음에 꿈에 그리던 하기야 소피아(Hagia Sophi)성당은 Holy Wisdom(거룩한 지혜)으로 불리며 가톨릭의 동방교회 중심인 콘스탄티노플에 537년에 완공되어 그 화려함은 당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솔로몬 신전보다 더욱 찬란하다”고 칭송을 받았으며 성당 내부는 모자이크에 반사된 수천 개의 램프로 휘황찬란하다는 표현이 있었으나 내가 방문했던 때에는 비록 부분적으로 보수를 수행하고 있었으나 천창과 측면창으로 부터 들어오는 빛이 웅장한 성당내부를 비추는 모습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하기아 소피아성당은 537년 건축 당시에는 성당으로, 후에는 이슬람의 모스크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며 비잔틴건축물의 심볼이며 최대인 32.5m돔(옆에 있는 Blue mosque보다 10m나 더 큼)이 설치되어 있으며. 지난 천년 간 건축된 최대의 성당(주교좌 성당, Cathedral)으로 내부전체를 돌아보면서 석재로써 장스판(長, Long Span)의 이런 건축물을 어떻게 건축을 할 수 있었는지 경이롭게 생각된다. 1520년 세바야 대성당이 건축되기 전까지는 지난1000년간 가장 큰 성당이었다 한다. 내부 의장재로 사용된 대리석은 대리석 자체의 무늬와 색체를 맞추어서 사용하였고 정교한 조각상과 성서를 바탕으로 한 벽화, 또 종교간 갈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물을 파괴하지 않고 상호 보존(?)한 모습은 우리였다면 가능했을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비록 1453년 이슬람 점령후 4개의 첨탑 미나렛이 세워지고 화려했던 일부 비잔틴문화, 예술의 극치인 모자이크가 회반죽으로 덥히고 종과 제대가 철거되는 등 일부 훼손과 변형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성당 이스탄불 도심주변의 많은 건물이 내 눈에는 역사적 유적지 같아 보였으며 점심까지 열정적인 터키인 가이드의 해설과 더불어 투어를 하고 점심으로 제공된 케밥을 먹고 런던으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으로 돌아 간다. 나머지 터키여행은 5/14일 귀국시 또 하루 일정으로 할 계획이며 이때 이스탄불의 다른 곳을 방문할 계획이다 도시 전체가 과거의 역사를 간직함 토산품 판매시장 끝
소피아 성당내부 돔
소피아 성당 내부 전경
내부에 의장제 대리석, 무늬를 그대로 이용함
비잔틴문화, 예술의 극치인 모자이크 ( 회칠을 벗끼고 복원하고 있는 모습)